#1 아차산 봉수대 끊어진 역사를 이어가다
아차산봉수대지는 해발 160.1m의 봉화산(烽火山) 정상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 중 함경도 경흥(慶興)을 시발점으로 하여 강원도를 거쳐 경봉수(京烽燧)인 목멱산 봉수대(木覓山烽燧臺)로 연결되는 직봉(直烽) 122, 간봉(間烽) 58처가 있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내지(內地) 봉수대였다.
봉수제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본격적인 국가제도로 확립된 것은 고려시대이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ㆍ정비되었다. 세종 때에는 특히 군사기능의 활성화를 위해 전국적인 봉수망을 정비하였다. 이 제도는 임진왜란 후 제구실을 하지 못하다가 고종 34년(1894)에 폐지되었다.
조선의 봉수는 그 시설상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 봉수인 서울 목멱산(남산)의 경봉수, 해륙․변경의 제l선에 위치하여 연대라고 호칭된 연변봉수(沿邊烽燧),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내지봉수(內地烽燧)로 구분되며, 이밖에 기간 선로상의 직봉[直線烽燧]과 그 보조선상의 간봉[間線烽燧]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봉수의 전달은 정세의 완급에 따라 달리했는데, 평상시에는 1거(炬),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거나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2거, 왜적이 해안에 가까이 오거나 적이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兵船)과 접전하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에 침범한 적과 접전하면 5거를 올리도록 하였다. 만약 적의 침입이 있을 때 안개․구름․비․바람 등으로 봉수에 의해 전달이 불가능할 때 봉수대는 포성(砲聲, 信砲․發火 등)과 각성(角聲, 角吹)으로 주위의 주민과 수비군인에게 급보를 알리고,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서 알리기도 하였다.
아차산봉수대는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여지도≫․≪양주목읍지≫․≪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 의하면,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 즉 현재의 ‘봉화산’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명칭에 따라 ‘아차산봉수대’로 이름한 것이다.
이 봉수대는 다른 곳에 현존하는 봉수대의 형태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의 기록을 참고하여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현 위치에 복원되었다.
중랑구청에서는 일제시대 만세운동에 사용했던 봉화산 정산의 ‘아차산 봉수대터’ 봉수거화를 기념하여 매년 순국선열의 날 기념일에 봉수 재현식을 개최하고 있다. 예문관에서는 중랑구청의 요청으로 2021년부터 행사를 대행하였는데 2021년에는 11월 18일 금년에는 11월 21일에 행사를 거행하였다.
#2 봉화산 올라가는 풍광이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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